어안이 벙벙 기쁘기 보다는 이게뭐야!!!!!!!!!!!!!!!!!!!!!!!!!!!!!!!
다이치에게 바라는것 세가지.
다케모토복귀 , 천국은 애니화하지 마세요, 태자좀제발예쁘게그려십라들아
솔직히 애니화는 반갑지가 않네.....
점점 컨셉이 말아먹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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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수사란, 지금의 외교관에 비유될지도 모른다.
중요한것은 각 나라간의 중요한 외교를 도맡는 일이다.
당시 (현재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외교의 임무에는, 용모도 중요시되고 있다.
따라서, 오노노 이모코는 미남자인 가능성도 있다는 추측.
또, 당시로서는, 장신 혹은 평균 이상의 신장이 아닐까.
(「오노노 이모코 대신상」(화도 당주 이케노보우 소장)이라고 하는 인물화가 현존 있습니다만, 당시의 그림이, 사실주의로 쓰여졌는지 어떠했는지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으로 오노노이모코는 실제로도 아스카시대의 연예인이었다는 것이 확정.(..)
또, 현재와 같이, 비행기로 수시간에 갈 수 있는 여행이 아니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하드한 임무이므로, 체력적으로도 강인은 인물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쇼토쿠 태자의 시중을 들며 꽃을 헌상 하는 임무를 실시하고 있던 일로보면, 매우 섬세한 성격의 사람이었던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적어도, 볼품없는 성격 의 분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노노 이모코는 화도 당주 이케노보우의 시조이다)
강운의 소유자.(럭키가이) 왜냐하면, 당시의 해운 기술은, 현재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 허술하므로, 중국에 가서 돌아온다는 것은, 흥하든 망하든의 결사적의 임무이다.
그 위험한 항해로 2번이나 성공하고 온다는 것은, 매우 운이 강한 사람이라고 추측을 하고 있다.
1회째의 견수사때 해난사고라도 있었으면, 그 후의 역사도 변했을지도 모르고, 사회의 시간에, 오노노 이모코를 공부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노노 이모코에게 있어서의 화도는, 견수사 이후의 이야기이다.또, 화도라고 해도, 화도의 바탕으로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취미로 화도(꽃꽂이)를 즐겼다고 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오노노 이모코는 화도 당주 이케노보우(이케노보우)의 시조이다.
화도 당주 이케노보우도 오노노 이모코도, 모두 매우 지명도가 높다.
하지만, 오노노 이모코가 이케노보우의 시조인 일은,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
「오노노 이모코=견수사」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오늘, 화도(꽃꽂이)라고 하면, 여성의 취미라고 하는 이미지가 강하고, 또 실제로, 꽃꽂이를 하시는 분은 대부분이 여성이다.
그러나, 원래는 남성의 취미로서 시작되어, 그것이 후에, 여성에게도 문이 열렸다고 하는 경위가 있다.
쿄토의 육각당이, 꽃꽂이의 발상지이다.
오노노 이모코는, 이 육각당의 시조가 되었다.
정식명은 정상법절. 육각씨로 불려 사랑받고 있습니다.
서기 587년, 쇼토쿠태자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3. 제2차 창작에서의 묘사.
동인계에서는 애니와 현재까지 연재분의 내용, 자신들의 취향을 겸해 새로운 2차 설정을 만들어냈다.
이는 본인들이 만들어놓고 만족해서 어느정도 준수하게 지키는 내용.
3-1. 공통적인 분모의 설정
1.쇼토쿠태자보다 키가 작다.
쇼토쿠태자와 함께 보이는 이미지와 캐릭터의 특성상 태자보다 키가 작을것이란 추측이 개인적으로만 소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오히려 이모코답다'란 암묵적인 만장일치로 공의 포지션이건 수의 포지션이건 게의치않게 공식화되버렸다.
현재까지 나온 설정의 키는 대략 160cm -170cm 초반까지 다양하나 결국엔 마의 175cm는 못넘긴듯.
2.쇼토쿠태자보다 힘이 좋다.
쇼토쿠태자가 '불쌍할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인것'으로 인해서(1권), 이모코는 반대로 힘이 좋다.
라는 이분법논리에서 나온 단순한 설정.
처음에는 태자가 평균이하로 약한터라, 이모코의 힘은 사실은 평균이 아닐까했지만,
'이모코가 휘두르는 폭력', '태자보다 체력적으로 우위인 모습' 등이 자주 나와 결국엔 쇼토쿠태자보단 힘이 좋은 것으로 통일되었다.
또한, '근육맨'네타가 나온 이후로 어느새부터인가 이모코의 몸에 아예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단, '공'을 미는 파에 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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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년 2월 7일.쇼토쿠태자 출생.(0세)
587년 5월14일 요메이천황 요양.
5월 21일. 요메이천황 사망. (13세)
592년 소가노 우마코. 스슌천황 암살./ 스이코천황직위 (18세)
593년 4월. 쇼토쿠태자 섭정으로 임명. (19세)
594년 2월. 스이코천황, 쇼토쿠태자와 우마코에게 불교부흥을 꾀함. (20세)
595년 5월. 고구려 승려 혜자,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됨(21세)
596년 11월 아스카사 공사완료. 아스카문화 꽃피움 (22세)
600년 수나라에 첫 견수사 파견. (26세)
603년 12월. 관위 12계 제정(29세)
604년 4월.헌법 17조 제정(30세)
607년 7월. 오노노 이모코, 수나라에 견수사로 파견(33세)
그해 겨울, 법륭사 완공.
608년 4월. 오노노 이모코, 수나라 사신 배세청과 함께 귀국. - 2차 견수사 (34세)
9월, 오노노 이모코 외 견수사 8명, 수나라 사신 배세청과 함께 다시 수나라로 감. -3차 견수사
610년 1월. 제 4차 견수사 파견.(36세)
3월. 고구려 담징에게서 채색, 종이, 먹 제조법을 전수받음.
612년 백제인 미마지에게 기악무를 배움.(38세)
613년 11월. 아스카와 나니와(지금의 오사카)를 연결하는 대도 완성. (39세)
614년 6월. 이누가미 미타스키를 수에 파견 - 마지막 견수사. (40세)
615년 4월. 쇼토쿠태자.법화경 주석서 "법화경의소" 저술.(41세)
620년 쇼토쿠태자, 소가노우마코, 역사서 "천황기" , "국기"편찬 (46세)
622년 4월 8일.쇼쿠태자 사망. (48세)
덧 : 태자사망설
622년 쇼토쿠 태자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태자의 전기에 의하면 죽는 당일 부인에게 "오늘밤 나는 저 세상으로 떠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태자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출처 : 일본 위키디피아/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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